매화 사랑으로도 유명했는데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며.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어떻게 보면 냉전체제에서 약소국들이 미국과 소련에 편승했던 것과 유사했다.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개혁파들도 청·일.
당시 중국의 몰락과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를 보면서.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그 결과로서 맺어진 조약의 1조는 강화도 조약 1조와 함께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러·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청의 몰락은 논란이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